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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를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함창달빛창작소 장동범
  • 조회 1049
  • 등록일 2022-10-20

고령가야의 옛터는 평화롭고 고즈넉했다. 처마마다 붉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는 논두렁을 태우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함창은 7천 명 남짓이 사는 작은 읍이다. 질 좋은 명주로 명성이 높았고 지금은 비옥한 논과 밭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한다. 젊은층은 대부분 도시로 떠나 고요하기만 한 이 시골 마을에, 어느 날부터 어린이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펴지기 시작했다.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어머니들이 모였다. 자발적으로 음악 공연과 다양한 행사가 탄생했다. 어린이 교육에서 시작한 공동체는 지난 3년간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올차고 여물게 확장했다.

시간이 멈춘 마을, 함창

“함창은 이천 년 역사가 스민 고장이에요.” 취재팀을 맞은 장동범 이장이 소개한 함창의 첫 문장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들어서 아늑한 함창은 친지 방문이 아니고서야 굳이 들를 일이 없는 동네다. 그 마을의 이야기를 들을 일은 더더욱 없을 터. 첫 방문이 틀림없는 우리에게 그가 직접 나서 마을의 시간을 둘러볼 투어를 자처했다. 드넓게 펼쳐진 곡창지대를 지나 ‘징그래미’ 마을로 향했다. 왕릉으로 짐작되는 무덤 두 구가 마을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었다. 무덤의 주인공은 무려 고령가야의 왕과 왕후. 고령가야는 삼국시대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소국이다. 아직도 알려진 게 별로 없는 고령가야인데, 처음으로 그 존재를 증명해낸 마을이 바로 함창이다. 조선 선조 대에 발견된 이 가야왕릉과 왕후릉 덕에 전설로만 내려오던 고령가야의 이야기는 실존한 역사로, 함창이 고령가야의 고도(古都)였음이 드러났다. 드라마틱하게 발견된 왕릉의 묘비는 마을의 살아있는 역사 교육터이자 문화 공간인 셈이다.

한때 제아무리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다지만, 그것은 이천 년 전 일. 현재 함창의 길 위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어르신들. 모두 온화한 미소로 반겨주었지만 쓸쓸한 풍경에서 심상치 않은 인구감소가 느껴졌다. 산업의 쇠퇴와 고령화로 시간이 멈춘 마을, 장동범 이장의 안내로 만난 함창의 첫인상이었다.

text 노수정 photography 조지영

평범한 공동체 사업의 시작을 알린 농부

이렇게 고요한 동네 함창에서 현재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은 3년째 이어가고 있다. 2017년 장동범 이장이 ‘달빛창작소’를 창단했고, 2018년부터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에게 생활문화공동체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이야기는 함창으로 이사한 시점에서부터 시작됐다. “저는 서울 토박이에요. 함창(상주)로 온 것은 8년 전 일이지요.” 대기업을 거쳐 성공한 사업가로 살던 그는 자연과 가까운 삶을 찾아 귀촌한 사례에 속한다. “상주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어요. 은퇴 후 전국을 돌며 살 곳을 찾던 중 현재 집자리가 마음에 들어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이지요.” 처음 2년간은 도시 생활자가 꿈꾸던 목가적인 일상을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몇 해 지나면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제 삶이 전처럼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왜 그런지 고민해보니 그 기저에는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더라고요. ” 그런 생각이 들 즈음 마을 저수지에 수상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섰다고 한다. 당연히 정부부처 및 시행사와 주민들간에 마찰이 있었고, 환경면에서나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자신이 사는 고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발벗고 나서야 하는 시점이었다. “대부분 주민들은 생업이 있으니 신경쓰기 어려웠죠. 그때 외지인이지만 여러 사회 경험이 있는 제가 중재를 맡았죠. 중간에서 상황을 개선했고 다행히 목표를 이뤘어요. 그게 주민들의 신뢰를 받은 계기였습니다.” 이 일이 인연이 돼 장동범 씨는 공동체에 관심이 생겼다. 점차 농촌의 현실과 문제를 알게 됐고 이를 타개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두드리고 다듬었다. 주민들과 서서히 관계를 넓혀가 3년 전부터는 이장도 맡았다.

“한때 같이 밥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던 사람들이 이제는 저마다의 생업에 몰두하기 바쁘잖아요. 원래부터 농촌에 존재해온 두레 공동체의 전통을 회복하면 어떨까? 그게 시작이었죠.” 함께 생활과 경제, 문화를 함께 누리는 농촌문화의 전통 회복. 지난 3년간 그가 직접적 간접적으로 몸담고 있는 함창 생활문화공동체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로컬푸드 협동조합 이사, 대안학교 이사 등 현재 갖고 있는 수많은 타이틀 중에 장동범 씨가 굳이 ‘농민’을 택한 이유도 방향이 같을 것이다.

어린이와 음악, 마을을 변화시킨 키워드

맨 처음 공동체 활동을 생각했을 때 장동범 씨의 관심사는 어린이를 위한 활동이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침체되어가는 지역에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활기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2017년 마음이 맞는 주민들이 참여해 달빛창작소를 출범했고,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양하게 조사를 하며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활동을 논의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의견이 모인 건 아니었다. “연령대와 관심사가 다른 이들이 모여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보니 1년간 논의해도 결론이 안 나더군요. 각자 상황과 비전이 달랐으니까요.” 그래서 완전히 공동체 구성원이 될 대상을 좁혔다. 어린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 어머니들. 그의 분석은 정확했다. 마땅히 학원이나 여가를 보낼 곳이 없는 함창에서 육아에 지친 어머니들의 반응이 즉각 나타났다.

“함창은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사회입니다. 젊은 여성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고 있어요. 가정에서 공동체의 변화와 발전을 끌어낼 수 있다고 여겼죠. 그래서 생문공 사업의 중심을 어머니회가 맡았으면 했어요.” 함창읍 청장년층은 전체 인구의 27%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어머니들은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젊은 세대의 축이자 장기간 이곳을 지킬 핵심 세대다. 함창읍 초등학생 인구가 유지되려면 교육공동체가 필수다. 외부에서 유입된 세대가 소통하고 활동하는 공간도 필요했다.

“제가 다니는 성당 오르간 연주자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서혜정 씨와 의논을 했어요. 그랬더니 합창단 이야기를 하더군요. 거기에다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은퇴한 비올라 주자 남편과 성악가 부인이 흔쾌히 합창단 지도를 맡겠다고 해서 탄력을 받았죠.” 그렇게 2018년, 달빛창작소는 함창초등학교와 함창중앙초등학교 재학생이 참여한 어린이 합창단을 창단했다. 어린이들이 모여 정기 연습과 공연을 하며 마을에 새로운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합창단이 가져온 관계의 확장

시골이라지만 방과 후 산과 들에서 노는 어린이는 드물다. 정규 수업과 돌봄 과정이 끝나면 교정 앞에서 기다리는 가족과 귀가하거나 동네에 하나뿐인 키즈카페에 가는 게 일과다. 그러니 아이들은 합창단 활동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친구들과 노래하고 간식도 먹는 시간이니 그럴 수밖에.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노래하는 동안 문화 수업을 듣거나 공동체 행사 준비를 했다. 자연히 아이들 합창 연습 시간을 활용한 어머니회 모임도 활성화됐다. 합창단 어머니와 마을 어머니가 함빛맘협동조합을 결성했고, 이제 생활문화공동체 사업 운영의 중심 주체는 어머니회로 옮겨졌다. 장동범 씨는 공동체 대표 자리를 서혜정 씨에게 물려주고 마을 이장이 되어 어머니회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어머니들이 모이다 보니 2019년에는 돌봄과 나눔, 교육 영역에 있어 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어머니회 회장집에 있는 별관에 아이들 돌봄 공간을 만들었고, 공유부엌을 운영해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공공기관에 전달하기 위한 꽃꽂이 등의 나눔을 시행했다.

어린이들이 쏘아 올린 합창의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어른들에게도 번졌다. 성인 합창단(단원 14명)도 활동을 시작했다. 덕분에 사업 2년 차인 2019년까지 함창명주축제(합창 공연), 어린이 핼러윈 파티(공연, 음악), 연말마을음악회, 함창음악축제(어린이 플리마켓), 어린이 크리스마스(연말 마무리 파티)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열렸다. 창작소 사람들도 행사를 함께 기획하고 활동을 성심껏 도왔다.

실타래로 이어진 생활과 사람, 그리고 공동체

함창의 길 바닥에는 드문드문 흰색 페인트로 칠한 얇은 줄이 그어져 있다. 마을의 주요 문화예술 장소를 잇는 표지다. “함창은 명주실로 유명하죠. 오랫동안 비단을 생산했고요” 이제 이장이 된 장동범 씨의 이야기처럼 바닥의 그려진 얇은 선은 함창을 대표하는 명주실이요, 다음 행선지로 안내하는 길이었다. 2015년 ‘함창 예고을-금상첨화’라는 공공미술프로젝트의 흔적이다. 이때 마을의 역사유산과 문화자원들을 잇는 예술의 길이 만들어졌다. 1924년 건립된 함창역 앞에도 명주실이 있고, 천장은 물레와 명주실로 만든 설치 작품(허씨비단직물 협찬)으로 수놓아져 있다. 2016년, 함창은 공공미술로 마을의 부흥을 꿈꿨지만, 운영 80년 만에 무인역으로 바뀐 함창역을 방문하는 사람은 드물다. 김천과 영주를 오가는 경북선 무궁화호 상하행선이 다섯 번씩 지날 뿐이다. 예술로 외지인을 불러모으려던 기존 시도와 별개로, 장동범 씨는 이 정겨운 역을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빈터에 꽃을 심고 역 안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하면서 말이다. 인구가 줄어든 마을에는 이처럼 쇠락한 공간이 곳곳에 있다. 그는 종종 폐허가 되곤 하는 유휴공간들을 주민이 모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키우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삶은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는데 모든 이가 한 가지 정해진 좁은 길로만 가려니 힘든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은 청년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조금 앞서 공동체를 시도한 선배로써 장동범 씨는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길을 터주고 있다. 함께 잘 사는 것의 즐거움을 조금 일찍 깨달은 그 덕분에 생긴 공동체는 어린이를 노래하게 했고, 어머니들이 배우고 나눌 수 있게 했으며, 밖으로 나갔던 청년을 다시 불러 들이고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함께 모이자 하나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시 함창이 노래한다. 시간이 멈춘 마을이 아니라, 다함께 맞추고 더불어 가느라 속도가 조금 느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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